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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모두가 외면한 그 공간에서 피어난 이야기 물건의 쓰임이 끝났다는 것은, 단지 그것이 고장 났거나 낡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어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삶과 맞닿았던 장소가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발길에서 멀어지고, 시간의 흐름 속에 침묵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런 침묵 위에 다시 사람의 숨결이 얹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수동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폐지 집하장과 자동차 수리점, 빈 공장과 버려진 창고들로 이루어진 이 동네는, 한때 산업과 노동의 현장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서울의 시선에서 잊혀진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잊혀진 공간들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성수동은 한때 서울 동부의 제조업과 물류를 담당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길가에는 타이어 가게가 즐비했고,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17.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주는 여유 – 치우지 않아도 되는 공간, 조용히 머물기만 해도 되는 시간에 관하여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너무 자주 치운다. 정돈하고, 정리하고, 정비하며 살아간다. 눈앞의 어지러움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여겨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을 조율하고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돈된 세계일까. 아니면 어딘가에 남겨진 ‘있는 그대로의 흔적’ 속에서 위로받는 감정일까. 요즘, 많은 이들이 일본의 작은 도시나 마을을 여행한다. 동네 골목, 오래된 식당, 전선이 뒤엉킨 가게 앞을 걸으며 그들은 말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아.” 그 ‘멈춤’이 주는 정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어딘가 치우지 않은 공간, 남겨진 기억, 급히 닫히지 않은 문의 틈, 그런 느슨함이 주는 여유가 있다.한..
16. 집 바깥이 즐겁다. 그곳엔 ‘온기’가 있다 – 집도 아닌 바깥에서 논다. 거리는 공원되고, 쇼윈도는 미술관이 된다. 걸어다니는 거리는 재미난 쇼들이 진행되고, 길이 즐겁다. 어떤 공간은 따뜻하고 어떤 공간은 차갑다. 우리는 무엇에 감정을 느끼는 걸까?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집 밖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심히 걸어 나선 길 위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설레고 분노합니다. 누군가는 바깥에서 더 나다워지고, 또 누군가는 낯선 거리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어째서일까요. 왜 우리는 집 바깥에서 그토록 많은 감정을 끌어안게 되는 걸까요.집은 보호의 공간입니다. 벽은 외부의 풍경과 소음을 막아주고, 창문은 빛을 조절하며, 문은 낯선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켜줍니다. 그러나 이 보호는 때로 고립이 됩니다. 정리된 가구, 어두운 조명, 밀폐된 공기..
15. 어느날 도시가 말을 걸었다 도시는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다만 우리는 그 말을 잘 듣지 않을 뿐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건물들의 형태, 거리의 질감, 오래된 간판의 표정,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담쟁이덩굴의 시간, 그리고 낮게 드리운 그림자의 속삭임까지. 이 모든 것이 도시의 언어이고,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도시의 언어를 읽을 여유를 잃어버리고, 그저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마치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끝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도시는 우리 곁에서 묵묵히 존재합니다. 오늘도 그 자리에.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성북동’, ‘망원동’, ‘심청동’, ‘신당동’과 같은 작은 이름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서울이라는..
14장, “당신의 성장기를 함께한 학교, 그곳은 어떤 곳이었나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공간에서 출발합니다. 이름하여 ‘학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이 가득했던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이 남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 대부분이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문 최초의 공적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가정이라는 사적 울타리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 머무는, 규칙을 배우고 감정을 익히는, 처음으로 ‘나 아닌 너’와 함께 살아보는 곳이 바로 학교였습니다.그렇다면 질문해 봅니다. 우리는 왜 학교를 ‘그렇게’ 지어왔을까요?길게 뻗은 복도, 동일한 규격의 교실, 나란히 배치된 창과 책상, 계단식의 강당, 정문 앞 플래카드, 그리고 운동장. 너무나 익숙한 이 풍경은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반복되어 왔습니다. 공립학교든 사립학교든, 시골이든 도시든, 우리는 모두..
당신의 현장을 책임 질 현장 소장의 역량이 궁금하지 않은가? 소규모 건설 현장소장검증제도 필요 1 건설 현장소장 역량평가 지표의 공개 필요현대 건설현장에서 **현장소장(현장대리인)**의 역할은 단순한 관리자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들은 구조·마감 공정, 안전관리, 공정조정, 품질확보, 대외 커뮤니케이션 등 시공 전반을 책임지는 실질적 총괄자이다. 특히 소규모 및 중소규모 현장에서는 조직적 지원체계가 부족한 탓에, 현장소장 1인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공사의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그러나 현행 제도하에서는 이들의 자격과 업무능력, 그리고 과거 이력에 대해 건축주나 감리자는 사전에 어떤 정보도 확인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많은 현장소장이 프리랜서 형태로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되며, 중소규모 시공사들이 급히 채용하는 과정에서 실질 검증 없이 투입되는 사례가 흔하다. 그 결과는 종종 공사 중단, 공정 지연, 품질 ..
13. 어느날, 그 건물이 말을 걸어왔다. 13. 어느날, 그 건물이 말을 걸어왔다.물리적으로는 무언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다가오는 감정은 때로 인간보다 더 분명한 언어를 건네는 법입니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마주친 건물 하나가 조용히 말을 걸어옵니다. 그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단호하며 분명합니다. 어떤 경우엔 그저 지나치는 순간이지만, 그 짧은 찰나에도 발걸음은 멈추고, 눈은 붙들리고, 마음은 잠시 되묻습니다. “이 건물은 왜 여기 있는 걸까?”, “이 벽돌의 결은 왜 이토록 섬세할까?”, “누가 이 창문을 이 자리에 놓았을까?” 건축은 그렇게 말을 겁니다. 거기에는 질문도 있고, 대답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결국 인간보다 더 오래 남아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존재, 그게 건축입니다.길을 걷다 문..
12. 비 오는 날, 기차역에 서서 아련함을 느낀다. 12. 비 오는 날, 기차역에 서서 아련함을 느낀다지하철역 입구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습한 공기가 목덜미를 감싼다. 외투에 묻은 빗방울이 천천히 마르며 주변 공기와 뒤섞인다. 사람들은 제각기 우산을 접고, 머리를 한번씩 털어낸 뒤, 익숙한 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 속에서 나는 문득 멈춰선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 늘 지나치던 기차역이, 오늘은 왠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낯설기보다는 오래전 어딘가에서 느꼈던 감정 하나가, 이 물기 어린 공간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비 오는 날의 역은 일상의 틈이다. 흐린 날씨와 젖은 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흡수한 듯한 회색빛 구조물. 익숙한 재료들, 익숙한 디테일, 익숙한 동선.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건축은 감정을 만들지 않지만, 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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