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이라는 도시는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 종교 건축들은 또 하나의 세계를 조용히 열어놓는다. 일상은 시끄럽고 도시는 복잡하지만, 그런 흐름을 거슬러 존재하는 공간들이 있다. 신자가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고, 의식 없이도 감응할 수 있는 장소들이다. 우리는 종종 그 안에서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서울의 종교건축들은 그런 ‘멈춤’의 순간을 선물한다.
서울이 확장되면서 외진 산에 있던 사찰이 신 내에 들어와 버린 경우가 있다. 조선시대 한양은 사대문이었어서 대체로 절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과 떨어져 있었다. 통상 산골짝 이라던가 사람들이 사는 것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산업사회의 이후 도시가 확장 되면서 외곽에 있던 사찰이도시 한복판이 되버렸다. 강남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91 년도 첫 직장 생활 하던 나는 선능역에서 가까운 봉은사를 점심 시간이나 퇴근후에 종종 찾아 갔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고준 한 사찰 풍경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종로 에도 조계사가 있었지만 보험사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봉은사는 강남이라는 거대한 도시소비의 심장부 한가운데에 유니크한 느낌으로 있다. 극도의 상업주의 한복판에 모든 것을 비유 라는 불교 사찰이라…고층 빌딩들과 사무실, 쇼핑몰, 카페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봉은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평온한 틈을 만들어낸다. 경내로 들어서면 흙길을 따라 발걸음이 자연히 느려진다. 목조 대웅전의 단아한 선과 기와지붕의 곡선은, 도시의 직선과 철골, 유리로 된 구조와는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다. 이질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대비 속에서 더 깊은 감흥을 만든다. 이곳은 신앙의 장소이기 이전에, 도시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해체시키는 공간이다. 그리하여 비신자에게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어딘가 ‘내면’이라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 점에서 봉은사는 종교적이면서도 공공적인 공간이 된다.
비단 이런 느낌을 불교 사찰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덕수궁 옆의 성공회교회라던가 명동 한복판의 명동 성당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이다.
덕수궁 돌담길 한가운데 있는 정동교회 역시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종교적 고유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다. 더군다나 정동교회는 서울의 근대성과 종교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기념비 같은 장소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교회 건물이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서양식 고딕 양식을 채택했지만, 주변의 궁궐 담장과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 이질적 조화, 혹은 시간의 병치를 품은 공간.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흘러들며, 마치 감각이 정화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동교회는 단지 기도하는 신자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되짚고 정체성을 반추하게 만드는 사유의 장소로 기능한다. 이곳에서 건축은 경건한 메시지의 운반자이자, 침묵의 언어가 된다.
그런가 하면 좀 더 색다른 공간도 있다. 봉은사처럼 도시가 확장 되면서 외곽의 공간이 도시화 된 또 다른 곳이 마포의 양화진 순교 성지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자들이 무덤이 있는 곳으로 독특하게도 천주교와 개신교 교회가 같이 있다. 특히 합정과 양화진 일대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옆 순교자기념성당은 그야말로 경건하면서도 전위적인 감정을 동시에 품은 공간이다. 기념성당은 전통적인 유럽식 성당 양식을 따르기보다는 현대 건축의 해석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희태 건축가의 이 작품은 매우 도발적이고 과감한 형태를 구현 하고 있다. 갓의 모양을 취 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강에서 첫번째로 보이는 돌출 된 형태 어울리는 등대와 같은 구성이다. 이곳은 노출 콘크리트로 브루탈리즘적 형태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 부 외장 이 벽돌로 마감이 되어 있다. 성당 주변으로는 회랑으로 테라스가 구성 되어 있어 성장 한 바퀴를 돌아서 한강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붕 형태라던가 테라스의 난간 구성 이라던가 성당의 거대한 목조 문 이라던가 계단의 디테일들이 매우 섬세하다. 어찌보면 도발적 이 까지 한 이러한 형태는 아이러니하게도 들어서는 순간 침묵하게 만든다. 공간이 주는 건축이 주는 아우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침묵 하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침묵은 무언가를 전한다.
이곳에서의 체험은 시각적 자극을 넘어서 내면의 고요를 직면하게 한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지 종교의 문제가 아닌, 인간 존재와 신념에 대한 묵상이 시작된다. 이 성당은 종교적 메시지를 공간 그 자체로 구현하며, 형식의 파격이 메시지의 진중함을 더욱 강조한다.
앞에서 말한 장소외성 또는 대립적인 공간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함께한 영동 성당도 빼놓을 수가 없다. 명동성당은 너무 유명해졌다. 명동이라는 상업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도, 오랜 역사와 천주교 탄압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하지만 그 유명함이 이 성당의 의미를 지우지는 않는다. 명동 거리의 인파 속에서 자연스레 그 높은 첨탑이 보이면, 사람들은 거의 본능처럼 그 앞에 멈춰 선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성당의 입구가 열려 있고, 그 안은 언제나 조용하다.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침묵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의례와 교리 이전에 위로의 장소이다. 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향내가 남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앉아 있고, 마음이 흩어졌다가 모인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 어쩌면 종교건축의 사회적 가치일지도 모른다.
서울에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교회와 사찰들이 있다. 이태원의 모스크는 한국사회에서 드물게 이슬람 문화와 정서를 표현하는 건축물로, 낯선 형태가 오히려 다양성과 포용을 상기시킨다. 삼청동에 위치한 경복궁 인근의 조그만 절은 복잡한 궁궐 일대를 걷다가 문득 들어서게 되는 마법 같은 느낌을 준다. 도심 한복판 종로에는 새벽마다 종소리가 울리는 조계사가 있고, 언덕배기에 앉은 명륜동 교회는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에서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신비를 선사한다.
이렇듯 서울의 종교건축들은 각각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품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마음을 다스리고, 멈추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다. 이 힘은 단순히 종교적 신념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라는 ‘장소의 언어’가 가진 본질적인 힘에서 비롯된다. 건축은 종교의 외피이자 그 정신의 형상이다. 구조와 재료, 빛과 공간의 관계는 믿음을 떠나 인간의 감각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정제된 침묵과 절제된 감성의 언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은 결국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신을 믿든 안 믿든, 그곳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크고 더 깊은 존재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서울이라는 현대 도시 안에서 종교건축이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유일 것이다. 분주함 속의 정적, 소란함 속의 고요. 그런 대조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회복한다. 종교건축은 그 회복을 위한 문을 언제나 열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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