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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대화하기

2-2.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고궁들

종로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고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입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이화동과 원서동 골목을 누비며 뛰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힐링이나 명상이라는 말을 몰랐던 시절에도, 고궁만큼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간은 없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궁궐은 다소 크고 조용한 놀이터 같았고, 사춘기에는 마치 그늘 깊은 마음의 은신처 같았으며, 건축을 전공하고 나서는 그곳이 단지 왕이 살던 옛 건물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켜켜이 쌓인, 하나의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경궁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이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낯선 친구들 틈에서, 저는 혼자 돌계단에 앉아 북악산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조용해졌습니다. 고궁은 조선의 중심이자, 그 중심을 지탱하던 공간이었지만, 제게는 그보다 먼저 무게감 있는 침묵의 장소였습니다. 너른 마당을 건널 때마다, 마치 내 속마음까지 낱낱이 드러나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것은 공간이 사람을 압도하거나 억압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명확한 질서와 중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했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깊은 언어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그 침묵이 유교적 세계관과 공간의 질서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 시절, 감정이 예민하던 때에는 창덕궁 후원으로 자주 걸음을 옮겼습니다. 특히 가을 오후의 후원은 저에게 있어 일종의 의식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자연과 건축이 다투지 않고 어울리는 이 공간은, 제 안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가만히 식혀주는 냉찜질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랑채처럼 생긴 정자들이 낮은 위치에 놓여 있고, 연못 주변의 나무들이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듯 보이지만 하나의 구성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은, 제게 ‘건축이란 조화 속에서 감정을 흐르게 하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처음 심어주었습니다. 건축 설계 수업 시간에 그 조형을 따라 그려보던 날들, 그리고 그 도면을 마주하며 처음으로 ‘공간이 감정을 만든다’는 것을 느낀 날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경벅궁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사생대회 같은 그림대회에 들어갔던 경복궁의 후원 마당에서 저는 처음으로 ‘나무가 건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마당 가운데 놓인 소나무 하나가 마치 중정을 구성하는 기둥 같았고, 나무의 그림자는 시간이 지나며 건물보다 더 뚜렷한 리듬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엔 건축이라는 말조차 몰랐지만, 무언가 정서적으로 ‘이곳이 좋다’고 느꼈던 건 그 나무와 마당, 그리고 적절한 거리의 처마들이 만들어낸 심리적 울타리 덕분이었습니다. 오히려 향원정과 근정전은 당시에 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건축을 시작하게 된 마음의 기점이 그곳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수궁 역시 다른 궁처럼 일강의 범위에 있었지만, 주변의 공간은 달랐습니디. 대학생이 된 후에야 비로소 ‘거리의 일부’로 다가왔습니다. 정동길은 나중에 아이 학교덕분에 매일 아침 같이 자주 걷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돌담 너머로 살짝 보이던 이국적 건물들은, 아름다움보다는 일종의 기묘한 거리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양식의 건축물이지만, 그 자리에 너무도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기에, 저 스스로도 그 건물이 가진 이질감을 불편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누군가와 나란히 걷기에 좋은 거리입니다. 너무 넓지도 않고, 너무 좁지도 않은, 대화가 흐르고, 침묵이 자연스러운 거리. 건축과 도시, 공공과 사적인 공간 사이의 감정적 경계가 무엇인지를, 저는 그 돌담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경희궁은 사실 저에게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사회인이 되고서도 한참 지난, 사실 아주 최근 어느 날, 우연히 들렀던 경희궁에서 저는 묘한 고요함에 사로잡혔습니다. 복원되지 못한 건물의 자취들, 축선이 끊긴 채 남은 마당, 시간에 침식된 기둥들. 마치 도시가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밀어낸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는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도 거의 없었고, 주변의 빌딩과 경희궁 사이에는 마치 평행선처럼 이어지는 두 개의 시간대가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그 불균형, 그 조용한 부조화 속에서 저는 비로소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라진 자리에 남는 여백을 통해 감정을 전한다는 사실을요.

이렇듯 제 인생의 각 시기에, 고궁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때로는 쉼터였고, 때로는 질문의 장소였으며, 때로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소들이 있었기에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고, 건축이라는 세계를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고궁의 공간은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천천히 살아갑니다. 그것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으며, 사람의 감정을 느리게 들여다보는 공간입니다. 돌담길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나무는 계절을 따라 변화하며, 마당은 사람의 걸음을 조용히 붙잡습니다.

서울에서 자란 제가 고궁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곳이 단지 역사의 현장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공간들이 사람의 감정을 담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축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요. 형태나 기능의 논리를 넘어서, 누군가의 감정을 천천히 끌어안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사람을 기억하는 공간. 저는 고궁에서 그것을 배웠고, 지금도 그 배움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고궁은 사라진 시간과 마주하는 장소입니다. 동시에 지금 이 순간 나 자신과 마주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세월은 흘렀고, 도시는 바뀌었지만, 고궁에 들어서면 언제나 느리게 숨을 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느린 감정 속에서, 저는 매번 다시금 건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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