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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대화하기

13. 어느날, 그 건물이 말을 걸어왔다.

13. 어느날, 그 건물이 말을 걸어왔다.


물리적으로는 무언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다가오는 감정은 때로 인간보다 더 분명한 언어를 건네는 법입니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마주친 건물 하나가 조용히 말을 걸어옵니다. 그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단호하며 분명합니다. 어떤 경우엔 그저 지나치는 순간이지만, 그 짧은 찰나에도 발걸음은 멈추고, 눈은 붙들리고, 마음은 잠시 되묻습니다. “이 건물은 왜 여기 있는 걸까?”, “이 벽돌의 결은 왜 이토록 섬세할까?”, “누가 이 창문을 이 자리에 놓았을까?” 건축은 그렇게 말을 겁니다. 거기에는 질문도 있고, 대답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결국 인간보다 더 오래 남아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존재, 그게 건축입니다.

길을 걷다 문득 멈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릴 적 등굣길에 늘 지나치던 오래된 연립주택이었습니다. 그 건물은 낡고 볼품없었습니다. 페인트는 벗겨지고, 벽면에는 덧칠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발코니의 난간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건물이 낯설게 보였습니다. 아무도 새롭게 단장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던 건물이었는데, 그날따라 전혀 다른 존재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날 햇빛이 건물의 측면을 비추고 있었고, 거기에는 누군가 손수 그려넣은 작은 벽화 하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오래된 건물도 누군가의 삶을 품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 건물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요. 그 작은 벽화는 건물의 속삭임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어. 너도 오래전 나를 매일 보았잖아.”

건축이 말을 건다는 것은 단지 시각적 감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간의 기억과 정서의 응축, 그리고 삶의 흔적이 우리 안에서 반응을 일으킬 때 가능한 감정적 상호작용입니다. 때로는 정면의 파사드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후면의 계단실, 오래된 우편함, 삐걱거리는 목재 현관문, 서투르게 덧대어진 천막 하나가 건축의 말이 됩니다. 그 ‘말’은 설명이 아닌 경험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며, 논리가 아닌 공감으로만 소통됩니다. 그 건물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시간을 담아냈단다.”

서울의 어느 오래된 골목에서, 한옥과 벽돌 건물들이 마주보며 이웃해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골목은 좁았고, 인도조차 정비되지 않아 어깨를 움츠리며 지나가야 했지만, 그 거리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함이 느껴졌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건축이, 서로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갈등 없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있어온 이 건물들은 서로를 배려하듯 시선을 피하고 있었고, 한옥의 처마는 벽돌 건물의 그늘을 덮어주고 있었습니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조용한 대화는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어.”

건축은 시각적인 언어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언어입니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흔적이 스며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재료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기억의 층위가 켜켜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건물은 멀리서도 눈에 띄고, 또 어떤 건물은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심해지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지나치며 무심해졌고, 그것이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건축은 여전히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다시 봐달라고 말이죠.

건축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단지 특별한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각을 여는 순간, 그리고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는 시간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급하게 목적지만을 향해 가는 도시의 일상에서, 문득 한 건물의 디테일에 눈이 머물렀을 때, 그것은 단지 디자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 건축의 언어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때부터 건축은 ‘구조물’이 아니라 ‘존재’가 됩니다. 말이 없지만 말을 거는 존재. 우리는 그렇게 건축과 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건물이 우리의 내면을 대변해주기도 합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 만난 텅 빈 공터의 폐허, 희망이 필요할 때 마주한 햇살 좋은 작은 마당, 힘겨운 하루 끝에 지나친 따뜻한 조명의 가게. 건축은 우리보다 먼저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감정이 투사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집니다. 건축의 의미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한 이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건축의 ‘말’은 때로는 사람의 말보다 더 깊습니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울리는 언어, 존재로 말하는 감정입니다.

나는 종종 건축가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기 위해 이런 경험들을 떠올립니다. 건물은 단지 설계도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과 마음 안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건물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조용한 속삭임으로 말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았던 날에도 여기에 있었어. 오늘은 네가 나를 보아주었구나.”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건축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건축은 결국 삶과 이어져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이며, 때로는 우리가 잊고 지내던 감정과 연결되는 다리입니다.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고, 고개를 돌려 건축을 바라보고, 조용히 대화를 나눕니다. 그렇게 건축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길을 걸어갑니다. 조금은 더 따뜻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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