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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대화하기

11장. 큰 창문, 작은 창문, 당신의 마음

11장. 큰 창문, 작은 창문, 당신의 마음



햇빛이 들지 않는 집은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이 말은 단순한 문장 같지만, 건축가로 살아오며 반복적으로 실감한 사실이다. 창문 하나의 크기, 방향,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풍경은 단순히 빛과 공기의 문제를 넘어,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기능적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간 경험은 기능이 아니라 감정에서 출발한다. 마음에 스며드는 빛, 고요히 흘러드는 바람, 프레임처럼 잘려진 창밖의 풍경. 그 모든 것이 하루의 기분을 결정한다. 창문은 어쩌면 가장 강력한 감정의 스위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 건축주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빛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그냥… 마음이 좀 밝아졌으면 해요.”. 그의 요청은 설계에 반영되었다. 거실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큰 창을, 안방에는 새벽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동향 창을 넣었다. 주방 옆에는 긴 가로창을 달아 바깥 정원의 작은 풍경이 식사 시간마다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몇 달 후, 그가 다시 사무실을 찾아왔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아침이에요. 실내 스며든 빛에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 말은 내가 설계라는 행위가 갖는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주었다.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감정을 회복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는 ‘좋은 집’을 말할 때, 단열, 구조, 수납, 동선 같은 요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이들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 공간이 나의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게 하는가?’이다. 일어나자마자 맞이하는 창문의 풍경, 눈부시지 않게 스며드는 아침 빛, 벽에 비치는 나뭇잎 그림자. 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정서적 구조물이다. 작고 어두운 방에선 숨이 막히고, 너무 커서 비어 있는 공간에서는 외로움을 느낀다. 사람의 마음은 공간의 스케일과 조화될 때 안정감을 얻는다. 그 조화의 가장 직관적인 장치가 바로 창이다.

큰 창은 세상과의 연결을 상징한다. 열려 있는 마음,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 나 자신이 세상 속에 있다는 감각을 제공한다. 반면, 작은 창은 집중과 내면의 시간을 위한 장치다. 특히 글을 쓰거나 사색을 할 때는 작은 창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감정의 폭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점에서 창의 크기와 위치는 단순한 디자인의 결과가 아니라, 사용자의 마음의 상태와 삶의 방식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설계자가 묻고, 사용자가 응답해야 하는 감정의 인터뷰인 셈이다.

창문을 설계할 때, 나는 늘 빛의 각도를 먼저 생각한다. 동향의 창은 희망과 시작을 상징한다. 서향의 창은 하루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남향은 가장 밝고 안정적인 에너지, 북향은 균질하고 차분한 감정을 준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이 지나며 공간의 표정을 바꾼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감정마다 그 얼굴은 달라진다. 이런 변화야말로 공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어떤 이들은 집에 창이 많으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사생활 침해, 외부로부터의 노출, 혹은 너무 많은 빛에 대한 거부감. 그 감정 또한 중요하다. 창은 개방이자 동시에 노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문은 외부 세계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나는 누군가에게 집을 설계할 때, 그 사람의 감정적 리듬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침형 인간인지, 사색의 시간을 즐기는지, 불안을 쉽게 느끼는지, 외부와의 연결을 좋아하는지. 이 모든 성향이 창 하나의 위치와 크기로 드러날 수 있다.

도시에서의 삶은 점점 창을 축소시킨다. 고층 아파트의 표준화된 창문은 개개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남향이면 일조권이 확보되었다고 안심한다. 하지만 그 빛이 어떤 방식으로 공간에 들어오는지, 그 빛을 받는 이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에 대한 상상은 없다. 우리는 창문을 열었을 때 불쾌한 에어컨 실외기나 콘크리트 벽면을 마주할 때, 공간이 주는 감정적 박탈을 실감한다. 설계는 여전히 기능 중심이지만, 삶은 감정 중심이다. 이 괴리를 메우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건축이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은 창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창틀 위에 턱을 괴고 비 오는 날을 구경하며, 세상의 색깔을 알아간다. 노인들은 창 너머 계절의 흐름을 보며 시간의 의미를 되새긴다. 바쁜 현대인은 창문조차 바라볼 여유가 없지만,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공간의 인상은 창을 통해 들어온 풍경과 감정이다. 창문 하나로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고, 희망을 품고, 그리움을 새긴다.

건축은 벽과 지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안을 흐르는 빛과 바람, 감정과 기억이 모여서 하나의 삶이 된다. 큰 창은 마음의 확장을, 작은 창은 내면의 울림을 준다. 당신이 원하는 창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어떤 창을 필요로 하는가.

삶은 매일 반복되지만, 그 안의 감정은 언제나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같은 공간 안에서도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단 하나의 창문, 그 빛과 바람의 흐름만으로도. 그렇다면 건축이란 결국, 당신의 하루를 비추는 창 하나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당신의 마음은 오늘 어떤 창을 바라보고 싶은가. 열린 창인가, 닫힌 창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천창인가, 낮은 위치에서 빛을 길게 끌어들이는 수평창인가. 그 선택은 단지 미적인 결정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과 인생을 향한 태도에 대한 깊은 응답이다.

우리는 더 자주 창문에 대해 말해야 한다. 크기에 대해, 방향에 대해, 풍경에 대해, 감정에 대해. 그것은 곧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기 위해서라도, 오늘 한 번, 천천히 커튼을 걷고 그 창 앞에 서보자. 그리고 묻자. “이 창은 내 마음과 잘 어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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