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억 속의 그 집

물건을 꺼내기 위해 오랜만에 서랍을 여는 순간, 문득 어떤 집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건 누군가의 향기, 집 안 가득 번지던 장판의 냄새일 수도 있고, 살짝 뒤틀린 문을 열 때마다 들리던 경첩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런 기억은 아주 작고 사소한 감각의 조각들 속에 숨어 있다가, 때때로 불쑥 우리 안에서 살아난다. 낯선 길을 걷다 문득 풍겨오는 고무신 냄새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바닥을 쓸던 소리, 아니면 세탁기 돌아가는 낮은 진동 같은 게 우리를 단숨에 어린 시절의 어떤 집으로 데려가곤 한다. 머무른 시간의 길이와는 상관없다. 기억에 오래 남는 집은 늘 어떤 감각적인 지문을 남긴다. 냄새, 소리, 촉감, 심지어 습도와 빛의 기울기까지. 그것이 결국 ‘그 집’이다.
나는 아파트 세대가 아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 역시 결국 아파트에 살고 있다.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공간적 합의는 종종 ‘편리함’과 ‘보편성’이라는 말로 위장된다. 주차가 편리하고, 단열이 잘 되고, 관리비가 저렴하며, 동선이 최적화된 공간. 그런 집들에는 더 이상 내가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저 조건의 목록과 스펙의 숫자로 측정되는 공간. 하지만 그런 공간에서는 기억이 생기지 않는다. 아니, 어떤 감정도 생겨나기 어렵다. 거기엔 다락도 없고, 숨을 곳도 없으며, 계절을 따라 변하는 햇살의 각도도 사라진다. 벽은 똑같고, 창은 정면을 향해 있으며, 복도는 조용하고 닫혀 있다. 감각은 평평해지고, 시간은 구겨지지 않은 채 흘러간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 집의 다락방을 부러워했다. 어떤 날은 그 다락에 올라가 다 함께 숨바꼭질을 했고, 또 어떤 날은 그 좁고 낮은 천장 밑에서 만화책을 돌려 읽었다. 그 공간은 어떤 설명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감정의 밀도 높은 장소였다. 다락은 기억을 품는다. 거기엔 바람의 냄새가 있고, 손바닥에 닿는 오래된 나무의 감촉이 있고, 오래된 상자에서 나는 먼지의 냄새가 있다. 한옥 마루 아래의 어두운 공간, 장독대 옆으로 기울어진 담장의 그림자, 창호지 너머로 흔들리던 외풍. 이런 것들이 내게는 ‘그 집’의 단편들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집’이라기보다 하나의 심상이고, 정서이고, 감정의 축적물이다.
그러나 도시는 점점 그런 집을 기억하지 않도록 우리를 훈련시킨다. 재개발, 신축, 단지화, 고밀도, 최적화, 그리고 표준화된 감각. 사람들은 쉽게 묻는다. “그냥 새 아파트 사면 되잖아.” 그리고 덧붙인다. “무엇보다 가격이 잘 오르니까.” 이 말은 곧 질문이다. ‘기억보다 중요한 건 자산 가치가 아니냐’는 묵시적 합의. 하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아파트를 살고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 집에 왔구나’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아파트는 늘 기능적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감정을 남기지 않는다. 따뜻한 기능은 없다. 그저 잊히지 않게만 해주는 감각이 필요하다.
미국 체류 시절, 100년 넘은 집에 살던 친구집을 방문했다. 넓은 잔디마당과 나무 현관문, 마루 위의 고풍스런 팬 조명, 벽난로 위의 작은 선반, 정원으로 이어진 뒷문. 그 집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소리는 바닥을 밟을 때마다 울리는 나무의 ‘끽’ 하는 소리였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는 거슬리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낮설지만 ‘아, 이 집이 살아 있구나’라는 묘한 안정감. 방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기류를, 친구는 몇 년째 그 집을 하나씩 고쳐가며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었다. 나역시 30년 넘은 목조주택에 살았었다.
그런 경험 이후, 다시 돌아온 한국의 아파트는 낯설고 매끄러웠다. 너무 정돈되어 있었고, 지나치게 조용했다. 마치 생활이 사라진 공간처럼, 기억이 머물지 않는 구조였다. 나는 여전히 그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형태의 집을 떠올린다. 다락이 있는 집, 중정이 있는 집, 낮은 벽을 넘어가면 닿을 수 있는 옆집의 마당, 서로 다른 형태의 지붕들이 엇갈리는 골목길. 그러한 장면들은 내가 설계하는 공간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글 속에서 되살아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집이란 결국 거기서 태어난 감정의 축적이다. 공간을 공간으로만 기억하지 않도록, 어떤 감각의 단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집은 많지 않다. 이사도 많고, 변화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집은 우리의 마음에 단단히 자리잡는다. 그건 단지 건물의 구조 때문이 아니다. 그 공간에 머물던 시간,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햇살, 창문을 열었을 때 스며들던 공기의 냄새, 그 모든 것이 결합된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집은 사라졌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건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공간. 그런 집이 있다면, 그것은 삶 속의 풍경이자 기억의 파편이며, 우리가 감정을 통해 공간을 이해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 책 『당신과 건축의 대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집을 기능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기억과 감정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람마다 ‘그 집’이 다르고, 그 감정의 지형도도 다르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은 그 집은 분명히 어떤 감각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소리일 수도 있고, 냄새일 수도 있고, 그날의 빛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공간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집’이라는 존재를 각인시킨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공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공간만이, 다시 삶 속에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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