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루에 스며드는 빛의 위로

창가에 앉아 가만히 밖을 내다보는 시간은, 대단한 일이 없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입니다. 그저 햇살이 벽을 타고 번지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모습이 스치듯 지나갈 뿐인데, 그 안에 수많은 감정이 담깁니다.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그런 위로의 순간.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다가도, 유리창 너머의 빛을 바라보다 보면 생각이 한 겹씩 벗겨지고, 몸과 마음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건축이라는 말은 때로 너무 무겁게 들립니다. 콘크리트와 철근, 법규와 도면, 수치와 설계 기준 사이에서 우리는 건축을 이해하려 애쓰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본질은, 햇살 한 줌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벽을 어떻게 세우느냐, 창을 어디에 열어두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지니게 됩니다. 같은 방이라도 아침 햇살이 들면 따뜻한 안식처가 되고, 빛이 닿지 않으면 단지 사각형의 방으로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듯 보이지만, 공간에 머무는 사람의 하루를 전혀 다르게 만듭니다.
빛이 공간을 들어올릴 때,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채광 이상의 것을 줍니다. 빛은 방향을 만들고,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계절의 감각을 새깁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감정을 조율하고, 삶의 리듬을 다시 조정합니다. 그래서 햇살이 드는 창이라는 말은 단순히 좋은 입지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감정의 톤을 바꾸는 하나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건축가로서 수없이 많은 창을 설계해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신중한 순간은 창의 위치를 정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그 창 앞에 앉아 울고, 웃고, 기대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따뜻한 빛이 들기를 바라며, 나는 수치를 조정하고 벽을 옮깁니다. 햇살이 드는 창은 단순한 개구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로가 들어오는 통로이며, 아무 말 없어도 마음이 쉬어가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건축은 언제나 거창한 개념보다 사소한 감각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조용한 빛, 바람, 나무 그림자. 그것이 만들어내는 위로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공간을 느끼고, 삶을 감각하며,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건축은 결국, 우리가 그런 순간을 얼마나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오늘도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햇살 한 줄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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