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모두가 외면한 그 공간에서 피어난 이야기

물건의 쓰임이 끝났다는 것은, 단지 그것이 고장 났거나 낡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어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삶과 맞닿았던 장소가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발길에서 멀어지고, 시간의 흐름 속에 침묵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런 침묵 위에 다시 사람의 숨결이 얹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수동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폐지 집하장과 자동차 수리점, 빈 공장과 버려진 창고들로 이루어진 이 동네는, 한때 산업과 노동의 현장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서울의 시선에서 잊혀진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잊혀진 공간들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성수동은 한때 서울 동부의 제조업과 물류를 담당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길가에는 타이어 가게가 즐비했고,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도시의 다른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가는 곳’으로 인식했지, ‘머무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 성수의 이 낡고 투박한 공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화려한 자본이 몰려들기 전, 산업의 폐허에 가까운 그 공간에 ‘감성’이라는 씨앗을 심었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독립 서점, 소규모 커피 공방, 수제화 브랜드, 리사이클 아트 갤러리… 도시가 외면한 공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심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의 베를린, 프랑스의 마르세유, 미국의 브루클린에서도 유사한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낙후된 산업지대나 재개발이 어려운 지역에서 오히려 젊은 예술가들과 독립 기획자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찾다 보니, 도시의 가장자리에 놓인 ‘버려진 공간’이 이들의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그 공간은 벽돌이 삭고 철문이 삐걱거렸지만, 그 자체로 낡음의 미학이 되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질감은 감각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성수동 역시 같은 궤적을 따르게 됩니다.
이른바 ‘재생의 감성’은 개발과는 다른 방향에서 시작됩니다. 도시에서 쓰임이 멈춘 공간은 흔히 철거되고, 전혀 다른 용도의 거대한 구조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수동에서 일어난 변화는 ‘기억의 연속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낡은 구두 공장이 전시 공간이 되었을 때, 그 건물의 기둥과 마감, 기계 자국은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그것은 단지 인테리어적 미학을 넘어서, 그 장소가 견뎌온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현재의 삶에 연결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이 연결감은 단순히 시각적인 감흥을 넘어, 방문자에게 어떤 정서적 울림을 전달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함께 있는 공간’에서 일종의 감정적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도시적 흐름은 단지 개인의 감성이나 유행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도시와 개인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깔려 있습니다. 서울은 고도로 효율화된 도시입니다. 속도와 밀도, 기능이 우선되는 구조 속에서 공간은 자주 ‘사용 가능성’으로만 평가받습니다. 그 속에서 성수동과 같은 공간은 예외였습니다. 기능은 멈추었고, 자본의 논리는 아직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사람과 공간 사이에 새로운 실험이 가능했습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관리 규제가 느슨한 지역에서 젊은 창작자들은 자신만의 리듬과 질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시의 일방향성’에 대한 저항이자, ‘생활의 주체로서의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성수동의 변화는 도시의 기능적 질서 속에 감정과 기억, 그리고 이야기가 다시 스며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거대한 공공정책이나 계획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수의 변화는 민간의 소규모 시도와 시민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도시의 빈틈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사람들이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입니다. 물론 이후의 젠트리피케이션, 자본 유입, 브랜드화와 같은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최초의 그 ‘틈새’가 존재했기에 지금의 성수가 존재합니다.
공간이란 단순히 기능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쓰임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다른 가능성들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버려진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도, 감정이 깃들고, 기억이 쌓이며, 공동체가 형성되는 일은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에 의해 공간은 다시 살아납니다. 이는 마치 흙 속에 숨겨진 씨앗이 비와 햇살을 만나 발아하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 자리에서 생명이 다시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도시의 낡은 구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단지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시간과 감정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 성수동이 보여준 이 변화는 하나의 해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발견했고, 그 이야기는 결국 도시의 얼굴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건축이란 결국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장소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모두가 외면한 그 공간에서 일어난 작고 조용한 움직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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