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좋은 공간은 누가 정하나요?
2.좋은 공간은 누가 정하나요?

우리는 흔히 좋은 공간을 이야기할 때 전문가의 언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건축가는 동선과 채광을 이야기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색과 재료의 조화를 말하며, 부동산 중개인은 입지와 평면을 들이밉니다. 그 말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적절한 구조와 합리적인 배치, 밝은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공간에서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공간이 있습니다. 반대로, 누가 보기에는 부족한 공간이라 해도, 나에게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죠.
이따금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그냥 좋아”라고 말합니다. 층고가 높고 햇살이 잘 드는 거실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천장이 낮아 아늑한 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푸른 정원이 보이는 창이 좋은 이도 있고, 외부 시선 하나 없는 작은 다락방에 위로를 느끼는 이도 있죠. 그러니 좋은 공간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 하나일 수 없습니다. 감각은 논리보다 앞서 반응하고, 경험은 규격보다 더 깊은 기억을 남깁니다.
나에게 ‘좋은 공간’이란 언제나 내 안의 감정과 연결된 어떤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울었던 적이 있다면, 우리는 그 공간에 어떤 진실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랑을 고백했거나 이별을 겪었던 장소, 혹은 책 한 권에 빠져 하루 종일 햇살 아래 머물던 자리. 그 모든 순간은 공간을 평가하는 기준표에는 없는 감정의 잔재들입니다. 결국 공간은 건축 이전에 감정의 그릇입니다. 단순히 예쁘고 고급스럽다고 좋은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히 머물러도 될 것 같은 느낌,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될 것 같은 온도, 그런 것들이 좋은 공간을 만듭니다.
나는 건축가로서 오랜 시간 동안 도면과 재료 사이에서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깨닫게 되는 건, 가장 좋은 공간은 ‘누군가의 마음이 놓이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머무는 사람의 체온과 기억이 쌓일 때, 그 공간은 비로소 자기만의 고유한 결이 생기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감각으로 그 가치를 입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공간을 설계할 때면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마음이 편안했냐고. 거기서 들었던 소리는 어땠는지, 냄새는 어땠는지, 창밖엔 무엇이 보였는지. 그 모든 감각이 모여 당신만의 ‘좋은 공간’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은 이미 훌륭한 설계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다시 묻습니다. 좋은 공간은 누가 정하나요?
그건 언제나 당신입니다.
당신의 기억, 당신의 감정, 당신의 감각이 곧 그 공간의 이름을 짓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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