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을 이야기해볼까?

우리는 하루의 끝에서 늘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제 집에 가야지.” 그 말은 습관처럼, 때로는 도피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 감정 없이 입에 붙은 문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가는 ‘집’은 정말 나를 닮은 공간일까요? 나의 삶을 담아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단지 몸을 쉬게 하기 위해 정해진 틀에 맞춰 들어가는 무표정한 장소에 불과한 걸까요?
현대의 많은 집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TV가 켜져 있고, 전등은 번들거리며 방 전체를 환하게 비추지만, 정작 그 안에는 소통이 없습니다. 벽은 단단하고 높게 서 있지만, 그 벽은 무엇도 기대게 하지 않습니다. 책장을 따라 꽂힌 책들이나, 탁자 위의 장식품들조차 말없이 관람당하는 물건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집 안 가구의 배치는 편의를 따르지만, 그 어떤 감정선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머무는’ 집은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드뭅니다.
집은 원래 이야기가 자라는 곳입니다. 아이가 울고 웃던 방, 가족끼리 밥을 나누며 다투고 화해하던 부엌, 비 오는 날 커튼을 젖히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거실. 그곳에는 시간이 쌓이고, 기억이 겹겹이 놓이며, 마음이 흔들리던 순간들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집을 짓고 있을까요? 아니면, 규격화된 평면도에 따라 만든 공간에 억지로 감정을 눌러 담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많은 집은,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주택 광고 속 그림 같은 부엌, 호텔 같은 욕실, 거실에 널리 깔린 대리석 바닥. 이 모든 요소들은 ‘삶’을 표현하기보다는 ‘소유’를 증명하는 데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거기에 누가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집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묻기보다는,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를 먼저 따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평가의 기준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도 점점 그 기준에 맞춰 숨기거나 꾸밉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집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집이란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번역된 공간이어야 합니다. 실패와 기쁨, 고단한 하루와 작은 위로가 어우러진 당신만의 언어가 녹아든 곳. 그런 집은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벽지가 조금 벗겨져도 괜찮고, 테이블 위에 커피 자국이 남아 있어도 좋습니다. 오히려 그런 결들이 삶의 온도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하니까요.
당신의 집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까? 아니면, 너무 말없이 깨끗하기만 한가요? 이야기할 수 없는 집은 결국, 살 수 없는 공간이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물어야 합니다. 나의 집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나는 그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건축은 그 물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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