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강남외의 컴팩트시티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2009년 도시경쟁력을 고민했던 <스페이스마케팅 시티/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출판> 에서 언급한 컴팩트 시티는 정발 필요하다.
서울은 오랫동안 강남 일대에 경제력, 인프라, 개발자본이 집중되어 왔다. 이는 한편으로는 선택과 집중의 도시개발 전략이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남권에만 축적되는 상승 시너지 효과는 심화된 자산 양극화를 낳고 있다. 그 결과, 강남은 단지 부동산 가치만이 아닌, 삶의 질, 교육, 의료, 일자리 등 다양한 도시 기능에서도 타 지역과의 격차를 벌리게 되었고, 서울의 균형적 성장은 갈수록 난망해졌다. 이와 같은 도심 내 집중형 개발의 반복은 도시경쟁력의 다핵화 전략을 지체시키고, 세계 도시들과 비교할 때 다양성과 공간적 포용력이 부족한 메가시티로 서울을 고착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강남을 억제하기 보다는 대체지역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개발 지역 분산이 아닌, 기능적, 환경적, 사회적으로 자족 가능한 콤팩트 도시들의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도보 15분 생활권 내에서 주거, 일자리, 교육, 소비, 문화, 휴식이 모두 가능하도록 기획된 도시모델, 즉 ‘15분 도시(15-Minute City)’는 단순한 도시계획 이론을 넘어서 오늘날 서울의 도시정책이 마주한 실천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 거리의 문제를 넘어 도시의 삶을 설계하는 방식, 시간과 공간의 통합 전략을 재구성하자는 제안이다.
서울에서 이러한 콤팩트 도시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도시의 구조를 바꾸는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의 도시계획체계는 기능 분리와 대규모 개발 위주로 짜여 있어 주거-업무-상업-문화 기능이 공간적으로 분산되고, 그 사이를 자동차 교통이 메우는 방식에 익숙해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준공업지역, 일반상업지역 등 기존 용도지역 체계를 복합용도 중심으로 전환하고, 지구단위계획은 보다 자율적이며 민간-공공 협력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수동이나 용산정비창 일대는 현재 서울시의 전략정비지구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복합개발 유인을 높이기 위해선 용적률 상향, 입체복합시설에 대한 인허가 우선권, 공공 기여의 유연한 평가 기준이 수반되어야 한다.
둘째는 정책적 유도다. 도시공간은 민간개발의 힘만으로 형성되지 않으며, 그 질을 좌우하는 것은 정책적 디자인이다. 각 콤팩트 시티 후보지에는 교육·문화·보건 등 공공생활시설이 반경 500미터 이내에 집적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서울시는 생활SOC 밀도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 동시에 교통정책은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어야 하며, 신교통수단(UAM, 자율주행 마이크로셔틀)과 도시형 모빌리티 허브는 도시 내 네트워크 구조의 핵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콤팩트 시티 특별지구’를 지정해 개발, 금융, 운영 측면에서 특례와 유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셋째는 사회적 기반과 시민 수용성의 문제다. 콤팩트 시티는 단순히 물리적 밀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주민이 개발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일정 지분 또는 운영권을 보장받는 ‘이익공유형 정비모델’이 필요하다. 성수동의 경우, 소상공인과 창작자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공간을 운영하고 브랜드화한 사례는 지역 커뮤니티 기반 도시재생의 성공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반포 일대에는 재건축 과정에서 공공기여로 조성된 커뮤니티센터와 공유공간이 주민 간의 소통과 교류를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모델은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파리는 안 이달고 시장의 주도로 ‘15분 도시’를 공식 도시계획 전략으로 채택했다. 모든 시민이 걸어서 15분 내에 학교, 병원, 상점, 공원,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를 목표로 자동차 중심 도시계획을 과감히 포기했고, 결과적으로 파리 중심부의 삶의 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Superblock)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고 블록 안에 공공광장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한 이 정책은 공간의 물리적 재구성을 넘어 시민의 생활방식과 도시적 상호작용을 전면적으로 변화시켰다.
싱가포르는 보다 제도화된 방식으로 콤팩트 도시를 구축해 왔다. 도시개발청(URA)이 도시계획, 인허가, 분양까지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주거-상업-공공이 혼합된 기능 복합 도시를 높은 밀도 속에서도 효율적으로 구현해낸다. 서울 역시 URA형 통합개발기구가 필요하며, 복잡한 부처 협의와 이중규제를 단일 창구화해야 민간 투자의 속도와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
결국 서울의 콤팩트 시티 전략은 단순한 도시공간의 재구성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재편하는 철학적 전환이다. 더 이상 자동차로 분절된 거대도시가 아닌, 사람 중심의 일상 생활권이 촘촘히 연결된 도시. 그런 도시에서 사람은 더 적은 거리와 에너지로 더 많은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으며, 도시 전체의 경제는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더욱 회복탄력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서울이 세계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새로운 도시구조, 새로운 계획 패러다임을 실행에 옮길 결정적 시기다. 콤팩트 시티는 그 시작이자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