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건축 이야기 [Urban & Architecture ]

도시 재생...2015년 폐특법 백서 원고

Archtect H 2025. 6. 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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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라는 용어가 이슈가 된 지 꽤 되었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는 국가적 어젠다로 사용하고 있다. 도시와 건축을 고민했던 사람으로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가 말하는 도시 재생이 RE-Use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는 거다. 사실 도시 재생은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로 (만들었다기보다는 번역했겠지...) RE-Generation을 이해해야 하는 말이다.

도시 재생이라는 한자어가 나온 것은 오래되었지만, 이 말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꽤 오래전이다. 아마 99년 즈음? 일본 고이즈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입법 활용되면서 알려졌다.

 

내가 2001년 중앙일보 부동산 최고위 과정 강의하면서 '도시재생'을 주제로 할 때 도시 활성화의 핵심이라고 언급했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도시 재생을 이야기하면, 다들 뭔 말이여...라고 반응이 있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연재하는 책 원고 글을 쓰던 2008년에도 큰 이슈가 안되었다. 책을 쓰면서 도시 경쟁력의 주제어로 삼으려다, 재생이라는 말이 재생지처럼 재사용의 느낌이라고 해서 내용으로 넣어 버렸는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전국적 이슈다. 너무 빨랐나?

3년의 여행 후 진짜 헤리티지 개념의 도시 재생 전문가인 이용규 박사의 요청으로 쓴 글이 있다. 아침부터 이 글이 떠올라 찾아서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다. 다시 읽어보니, 새삼스럽다....

 

도시 재생과 스페이스 마케팅

 

 

도시 재생이라는 단어가 어느 시점부터 도시계획이나 건축 등 전문 영역에서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는 일상 언어가 되었다. 패션을 다루는 여성 잡지나 트렌드 잡지에서도 도시 재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몇 년 전만 해도 전문가 사이에 회자되었던 말이 일반화되었다.

도시 재생(Urban Renewal), 도시 활성화(Urban Revitalization),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등 수많은 새로운 단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 등에 등장하고 있다. 각각이 다른 용어 같지만 미세한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 큰 범주에서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중 논란이 되는 하나의 현상이 있는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고급 주거화?)이다. 이는 도시 재생이나 활성화 정책 또는 전략의 결과로 발생되는 일종의 계급 교체 같은 현상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진지하게 해봐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나쁜 의미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렇게 쉽게 판단하기 어럽다. 왜냐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과 상보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용어의 다양한 사용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혼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전체 글을 쓰려 한다. 다만, 미세한 차이가 있는 다른 용어는 글의 전개에 의존해서 사용할 예정이다.

 

 

1. 도시의 변화

19세기 산업혁명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만들어 냈고, 지리적 공간 구조를 확연히 변화시켰다. 이전에도 도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산업 혁명이 야기한 잉여 자산의 가능성은 엄청난 가속도로 도시를 변화시켰고,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발생된 다양한 모순과 갈등은 19세기 말 이데올로기 전쟁을 촉발 시켰고, 전혀 다른 경제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도시는 이런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구축되기 시작하는데, 각각의 미세한 차이를 단순화 시킨다면 크게 두 체제를 언급할 수 있다. 그중 한 축은 국가와 같은 중앙 집권 시스템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며 배분하는 계획 경제 시스템이 있다. 다른 한 축은 국가와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통제와 자율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자유 경제 시스템이 있다. 우리는 후자를 자유 시장 경제 체제로 이해하고 있는데, 도시의 구성 역시 이 범주 안에 있다.

구 소련과 같은 철저한 계획 경제를 선택한 공산 또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가 가능하리라는 믿음 아래서 도시를 운영하고, 계획했다. 개인의 욕망과 자율적 개입보다는 그들의 체제와 모순되게 엘리트 집단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서 자생적인 요구로 인한 도시 재생의 개념보다는 계획의 순환과정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서방국가로 지칭되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역에서는 도시 역시 일종의 시장 상황에 맡겨져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첨예한 사례들은 미국의 다양한 도시들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모든 것을 새롭게 건설해야 했던 신흥 국가 미국의 경우는 오랜 시간 동안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발달되어온 유럽이나 아시아의 도시와 달랐다. 유럽의 식민지 경쟁으로 여기저기 세워진 주둔지들이 중심이 되긴 했지만, 새롭게 부를 축적한 식민지의 부유층과 산업이 도시들을 만든 것이다. 왕이 없는 거대한 대륙에서 이런 경제적 동인은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도시들을 탄생시켰다. 18,19세기 급성장한 시카고나 뉴욕 등 미국 대부분의 도시들은 엄청나게 빠른 시간 동안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통제되지 않는 개인의 이익들은 극대화되었다. 그 결과 이미 19세기 시카고와 뉴욕에서는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도시의 마천루들을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공간을 이동하기 시작했고, 자본의 이동은 공간들의 탄생과 죽음을 이끌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은 바로 이런 새로운 도시 변화와 성장의 시기였고, 혼란의 시간이었다. 개인 간의 이익은 충돌했고, 갈등이 커졌다. 도시의 공간, 즉 부동산은 하나의 생산물처럼 이익을 만들어내는 상품이 되었다.

사실 부동산이 이익을 만들어내는 상품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훨씬 더 이전부터 일이었다. 이미 17,18세기 영국 런던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들에게 비싼 임대료를 받는 작은 집(그들의 고향에서는 저택 크기를 살 수 있는 비용) 사업이 번성했다. 수요가 커지니, 집은 작게라도 비싼 값이 팔리거나 임대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난 현상인데, 산업시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극대화된 것이다.

 

여타 사업처럼 부동산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기업들이 탄생했고, 이들은 원가가 저렴하게 드는 새로운 사업지를 찾아다녔다. 바로 근교 주택단지, 또는 근교 도시의 탄생이다. 예를 들면 1902년에 시카고 서쪽에 만들어진 오크 타운(The Village of Oak Town) 같은 경우다. 이미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20세기가 되자마자 개발된 일종의 작은 신도시 개념의 전원주택단지다. 급성장하는 시카고의 부동산 가격과 거주 환경은 주민들에게 대체 주거지를 찾게 만들었다. 기능적인 분화와 도시개발이 시작된 19세기 말 시카고는 고층 건물의 기업들 본사나 은행 같은 업무용 건물들과 물류 시설 등이 계속 만들어졌다. 이런 환경은 교육과 주거의 편안함을 요구하는 거주 환경과 충돌하게 되었고, 이에 주목한 사업가들은 교외에 새로운 주거지를 공급하면서 수익을 창출했다. 시카고의 오크 타운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고, 타잔의 원작자가 살던 곳이다, 더불어 미국 건축의 아버지 같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수많은 건축 작품들이 보석처럼 살아남아 미국인들의 문화적 배양기처럼 전국의 수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곳이다.

도시 재생을 언급하는 이 글에서 오크 타운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대체지 들의 개발로 인해, 기존 도시의 기능들이 상실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집이 빠져나가고, 학교가 빠져나가고, 근린 생활 시설들이 하나 둘 기존 도시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각각의 요소와 기능들이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는 도시에서 구성요소들의 약화는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

기존 도시지역의 기능 악화를 가속화한 것은 20세기 전후 지배하던 기능 분업화 개념이다. 도시는 기능별로 주거지와 업무지역 등으로 철저하게 분리되었고, 각각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교외 지역의 거주 시스템은 20세기 중 후반까지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패러다임이었다. 경제적 부를 향유하던 미국을 동경한 다른 나라들에게는 베껴야 하는 하나의 모델이었다.

미국의 경우 민간 주도로 교외의 신도시들이나 근교 주거지들이 급속도로 확장하고 성장한 반면에 유럽은 국가나 지역 정책으로 완성되어 갔다. 아시아처럼 급속도로 성장하는 국가들의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급 부족 때문에 근교 도시들이 정책적으로 만들어졌다.

민간 중심으로 변화되었건, 정책적으로 진행되었건 이들 개인의 자본 축적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큰 틀에서 보면 유사한 도시의 성장과 변화가 전개되었다.

 

 

2. 도시 성장의 부작용과 몰락

여행을 하다 보면 도시의 흔적을 목격하게 된다. 도시는 수 천년 동안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번성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모든 도시의 시간 축에 따른 변화가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나타난 도시의 문제점들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연구하고 언급하고 있다. 1장에서 언급 한 것처럼 대체 지와 기능 상실로 인한 도시 기능의 불완전성은 도시의 경제적 역량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의 경우는 상대적 변화 개념에서 언급할 수 있지만, 강원도 태백시의 경우 도시의 기반 산업이 몰락하면서 도시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인구감소, 세수 부족, 투자의 축소 등은 서로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도시의 축소를 가져왔다. 충청도라는 도명의 근거가 된 충주나, 경상도 도명의 근거가 된 상주의 경우도 유사하다. 산업사회로 진입되면서 이에 합류하지 못한 도시들은 경제적인 자력 역량이 떨어져 기존 도시 규모가 축소되거나, 성장이 멈춰버리게 된다. 이런 환경들 역시 도시 공간의 여기저기 버려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매우 다양한 원인들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붉은색으로 문제화되는 지역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비단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도시들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전략적 개념으로 또는 생산성의 개념으로 기능별 분리를 추구해 왔던 도시 계획이나 전략은 인체의 신진대사처럼 긴밀한 관계를 요구하는 도시의 완성도를 약화시켰다.

이런 기능별 분화라는 개념은 전체 조직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장에서 예를 든 도시에서 주거기능의 약화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공간 활용도를 저하시킨다. 공장 지대로 분리된 영역은 담장 바깥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이 되고,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산업 지대로 분리된 공간 또한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고 번화한 공간들 역시 업무시간에만 활용하는 공간이 되었다.

선진 산업 국가들의 도시 공간에서 이런 공간의 단순 기능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 산업국가 대부분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동시에 기존 거주지로 각광받던 지역들은 빠져나간 주민들로 인해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거주자가 빠져나간 지역들은 관련 경제적 생태계의 몰락은 자명한 일이다.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하던 세탁소, 식료품 가게, 미장원, 작은 식당 등 수많은 소규모 상점들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연이어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저소득 서비스 산업 종사자나, 회계 사무소들을 문 닫게 했다. 자연스럽게 주거 부동산들은 누구도 구입하고 싶지 않은 곳들이 되어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이곳들은 관리의 범위에 벗어나게 되었고, 일부 지역은 대낮에도 걸어 다닐 수 없는 황폐한 공간이 되었다. 주간 동안 번화한 상업지역이나 업무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퇴근시간에 맞춰 썰물처럼 빠져나가 사람의 통행이 줄어들게 되니, 자연스럽게 이런 곳에서는 범죄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런 극단적 사례들은 우리나라보다는 선진 산업 국가들에서 나타난 상황이었고,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서는 이런 도시 문제들은 본격화되었다. 민간의 자율성과 참여가 강한 미국의 도시들에서는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땅이 넓어서 어디든지 대체지가 가능한 미국인지라 이런 현상은 쉽게 목격된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터 스틴(Tustin) 시의 다운타운은 말 그대로 박제된 그 자체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중반 번화한 다운타운의 모습은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공간으로 “임대 중”이라는 간판이 즐비하다. 지나가는 보행자들 또한 드물어서 대낮에도 황량하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도심에서 차로 20분쯤 나가면 새로 만들어진 근린 쇼핑몰에는 사람들이 타고 온 차로 만 원이다. 기존 도시가 아닌 비어 있는 땅이었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원가가 저렴한 지역을 구입해서 주택과 쇼핑몰을 건축하고 분양한 것이다. 덕분에 주차도 어렵고, 땅값과 소유권이 복잡한 구도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력을 잃어 점점 빈 공간이 되어 간다.

더욱 극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도시는 오대호 인근의 산업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나 미시시피강 연안의 세인트루이스(St. Louis) 같은 도시다. 디트로이트는 도시산업 전반이 붕괴되면서 도심뿐만 아니라 도시 기능 전체가 몰락하는 상황이고, 시 정부는 이미 몇 해 전 부도를 선언했다. 세인트루이스는 디트로이트 보다 덜 극적이지만, 1950년에 인구 90만에 육박했던 도시가 지금은 30만으로 서서히 침몰했다. 1905년 세계 무역 박람회를 개최하고, 유럽이 아닌 대륙에서 최초로 열린 하계 올림픽 개최지의 번영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나 시대의 변화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꼴이 되었지만 세인트루이스 나름대로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노력들은 했었다. 흑백 인종 간 결합과 도시 성장을 이끌기 위한 상징적 프로젝트인 푸러 이 트이고(Pruitt igoe) 주거지 계획을 했었고, 에펠탑만큼 유명한 세인트루이스 그랜드 아치를 건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푸루이트 이고는 끊임없는 범죄 주거지가 되어 결국 뉴스와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었고, 1970년 단지 전체를 폭파시켜야 하는 철거의 대상이 되었다. 여전히 세인트루이스의 상징이긴 하지만, 단지 랜드마크 시설일 뿐인 그랜드 아치가 도시를 부활시키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도시 곳곳은 비어있고, 관리하지 못하는 건물들은 철거하고 있다. 자생 적자 구의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부활의 기미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위의 사례처럼 기능적 분화로 인한 부작용으로 발생되는 문제만큼,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도시 경쟁력 약화로 인한 도시 문제도 상당하다. 흥미로운 것은 공산국가에서는 이런 도심 공동화 현상이나 문제가 현저히 드러나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거주의 이동 제한이라는 강력한 정책적 수단과 사유 재산권의 제한은 전체적인 도시 공간이 열악하긴 해도 선명하게 좋고 나쁜 구분이 드러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서방의 도시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이라는 야성으로 운영되는 곳이어서 몰락과 성장이 뚜렷하다. 반면에 이런 국가의 영향력이 강력한 도시들은 야성보다는 통제되기 때문에 쉽게 몰락과 성장이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많은 연구의 사례들에는 이들 국가들의 도시들이 언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통제와 철저한 계획으로 억제된 상황은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즉, 도시 재생이나 도시 활성화가 계획되고 진행될 때 벌어지는 부작용에 대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스페이스 마케팅 시각으로 연구하는 필자 입장에서 주목하게 된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보다는 하나의 대안으로 관련한 아이디어를 언급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3. 자연스러운 도시 재생의 기운들

세상에는 자연 치유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상처가 몸 안의 저항력과 진화의 결과로 스스로 저항력을 만들어내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치료된다는 점이다. 사회 현상에도 이런 흐름이 있다.

도시의 몰락과 노후화, 또는 범죄지화되어 가는 공간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그냥 지켜보지 않고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이 전개되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시 활성화(Urban Revitalization)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다양한 정책으로, 연구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또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다양한 성과나 실험들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흥미롭게도 관이나 정책적으로 주도하고 있어, 일의 추진력은 강력하게 전개된다. 다만 선출직 행정권역에서 진행되고 있어, 내용과 상관없이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왕왕 있어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이 주도가 되건, 정치적 역량이 있는 행정권역에서 진행이 되던 도시 활성화는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기존의 인프라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도시의 가용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확연한 지지를 받고 있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도시 활성화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본다면 에너지가 발생되는 다양한 역동성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도시의 기능이 막힘없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소득 계층이 거주하고, 여러 직종과 직업군이 공존하는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보행이 중심이 되며, 소공원과 카페 등 사회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도시 공간 구성이 요구된다. 도심 보행 및 정주환경이 중요하게 된다. 특히 가로의 복원은 도시의 커뮤니티 공간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결국 공공성 있는 개방적인 도시 환경 구축이 거론되며, 도시 생태계의 복구를 넘어서 왕성한 흐름을 목표로 한다. 이런 도시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도시 재생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목표는 1950년대 도심 공동화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수많은 도시 사회학자나 도시 계획가, 건축사들의 작품이나 연구 등으로 발표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도시 싼 디에고(San Diego) 역시 교외 도시들의 발달과 도심 노후화로 인해 도심 문제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되면서, 흥미로운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흔치않게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도시를 재구성했고, 무엇보다 도심 내 거주자들을 증가시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계획이 시도되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다운타운에는 역사 유적 보존(Heritage) 개념으로 도시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는 도시 건축 정책이 적용되었다. 그 결과 헐어내고 대규모로 새로운 시설을 구성하기보다는 기존 건축물과 도심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 대신에 내용면에서 거주가 가능한 주거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덕분에 도심은 미국의 대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야간에도 사람들의 보행이 가능한 도시로 변화되었다. 보행과 거주라는 기본 개념은 도심 재생과 활성화라는 목표에 충실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샌디에이고의 도심 재생의 백미는 펫코(Petco) 사가 지원하는 지역 야구장 일대의 재생 사업이다. 일종의 재개발인데, 이곳의 개발이 무척 흥미롭다.

 

재건축된 샌디에이고 야구장은 기존 터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덧붙이는 방식으로 야구장을 만들었다. 흡사 오래된 동네 골목에서 야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난 풍경을 만들었다. 주변의 건물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상업적 목적으로 분양하거나 임대한 고층 주거지들이 즐비한 이 지역에 사람들의 보행을 유도하는 다양한 사교적 소비 공간들이 운영되고 있다. 즉, 카페나 레스토랑 바 등이 이런 용도들이다.

카페에 주목해서 적극적으로 도시 활성화를 유도한 사례도 있다. 호주 멜버른 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내의 지자체들도 참고해 볼 만한 사례가 있는데, 멜버른 시가 진행한 스트리트카페(Street Cafe) 개념이다. 카페는 사회적 소비 공간으로서 매우 독특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상업시설이다. 일반적인 상업공간들처럼 카페 역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서로 수다를 떨거나 친목을 목적으로 만나는 공간으로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런 특성은 자연스럽게 가로의 활력도를 증가시키는 역할과 가로 보행자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상호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 결과 가로의 치안에도 긍정적 효과를 주는 공간이다. 멜버른 시는 이런 특성에 주목해서, 시내의 다운타운 인도면의 보행 양이나 통행량들을 측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운타운의 가로들은 등급을 부여받았으며, 등급에 따라 스트리트 카페의 규모와 유지 비용을 책정했다. 흥미로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시 당국은 공공 보행로의 일부를 상업시설인 카페에 임대해주고, 점유류를 일종의 임대료 개념으로 징수하는 시스템이다. 바로 이점이 국내의 불법 테라스 점포들이나 노점상들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멜버른의 이런 전략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다른 다양한 도심 정주를 위한 정책들도 있었다. 외국 학생들의 기숙사를 유치한다던가, 주거시설 허가를 대폭 완화하는 전략들도 지원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시도들은 도심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치안 역시 상당히 개선되는 효과를 보았다.

도심 재생 또는 활성화 정책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도심 역사에 대한 가치 부여다. 도시의 정체성이나 역사성과 관련해서 최근에는 20세기 초반이나 중반의 산업 시설에 대한 유적화도 크게 이슈화되고 있다. 분명 과거 왕조 시대의 궁궐만큼 현대 산업 사회로 진입되면서 수많은 사건과 역사들이 반영된 산업 시설들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때문에 정주나 거주의 기능이 작용하지 않는 각종 산업시설들을 철거해서 새로운 시설을 만들기보다는 그 자체를 유적화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애틀 가스 워크 공원(Gas Works Park)인 경우 거대한 공원 한 중심에 낡고 박제화된 가스등 공장 원형 그대로 설치되어 있다. 마치 거대한 조각으로 인정받는 듯한 이런 시설물들은 어찌 보면 20세기의 탑이나 거대 조각처럼 남아 있다. 단지 박제화된 이런 산업 유산들은 조금 더 진일보한 형태로 생존하기도 한다.

 

스포 큰(Spoken) 시의 터빈 발전소는 원형 그대로 모습을 두고 거대한 발전기 옆에서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솔트레이크 시티(Soltlake)의 트롤리 정거장은 쇼핑몰로 살아남아 사람들의 방문을 기다린다. 가장 세계적으로 이슈화되었던, 영국 런던 템스 강변의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은 더더욱 극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19세기의 벽돌조 화력 발전소는 내장을 다 들어낸 듯, 껍질만 남아서 거대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 탄생했다.

때로는 시민운동에서 시작된 경우도 있다. 뉴욕 맨해튼 남서부에 위치한 하이라인(High line)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경쟁력 상실로 사용되지 않는 고가 철도는 조금씩 철거되었지만, 이중 일부를 활용한 공중공원화 아이디어를 건축사들을 비롯한 시민운동가들이 제안했다. 약 20여 년 동안 시민운동으로 시작해서 철거 대신에 보강과 새로운 활용으로 도시 내 활력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허공에 떠 있는 기찻길에서 온갖 나무와 풀들이 자라는 거대한 자연의 공원이 빌딩 사이사이를 지나는 장관이 연출된 것이다. 정치적 구호와 업적이 아닌 도시민들의 자발적 재생산업인 것이다. 그 결과 하이라인의 일대는 농축산물 가공 시설과 시장에서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재 조명 받고, 현재도 변화의 손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4. 도시 재생! 기존 경제적 생태계와 공존하라.

도심 공동화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대규모 재개발 방식의 도시 활성화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 냈다. 이는 전혀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도심 재생을 위한 재개발은 필연적으로 거대 자본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재산 등 이해관계가 얽힌 도심은 개발 자체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재개발이 오롯이 공공시설이나 공공재가 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던 용산 사업이 좌초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토지 수용에 따르는 보상이 아닌가! 바로 이것은 사업에 있어서 원가에 해당하는 것이고, 원가가 비싸지면, 자연스럽게 최종 가격이 비싸진다. 바로 이점이 문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중국인 거리 개발 계획은 기존 영세 상인과 거주자들의 삶을 지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긴 하지만 이미 할리우드의 수많은 영화들이 이런 상황을 영화 속 설정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산드라 블록이 주연했던 <투 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에서는 오래된 정서적 랜드마크인 건물을 지키고자 재개발에 저항한다. 멕 라이언 주연의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에서는 재개발 대상지에 포함된 작고 오래된 동네 서점을 지키고자 동분서주한다. 만화영화 <업(UP)>은 아예 재개발사업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고집스러운 노인의 집 지키기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도시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재개발 개념은 기존 거주자들이나 생활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런 저항에 부닥치는 것이다.

미국에서 근교 주택(Suburban)이나 엣지시티(Edge City)가 탄생한 이유 중 중요한 배경이 개발의 용이성 때문이다. 도시 외곽의 미개발지는 기존 도심 개발에 비해서 현저히 투자가 적다.

2000년대 초반 대단한 화제였던, 13년 걸려서 지주들을 설득하고 2년 만에 완성한 동경의 록본기 힐즈(Roppoingi hills)의 예를 들어보자. 이 경우도 400여 명의 지주들에게 상당한 지분과 이익을 약속하고 진행했다.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이 13년이라는 사업 설득 과정과 기존 도심 지역들의 부동산 가격이다. 기존의 도시지역은 당연히 교외의 미개발지와 투자비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당연히 민간사업에서는 원가 상승이 올라가게 되므로, 분양이나 임대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수익을 안정화 시키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그 결과 전 세계 어느 곳의 기존 도심을 재개발하는 경우 고급(Luxary)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붙는다. 고급에 집착하는 이유는 투입 대비 가장 경제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재개발 지역의 주거는 고급 주택이 될 수밖에 없으며, 상업 시설 역시 고급화 전략이 우선 선택된다.

 

그 결과 기존의 거주자나 생활 시스템은 완전히 무시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는 파괴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급 주거지화, 또는 고급 지역화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 고급화라는 결과로 설명되는데, 실제 국내뿐만 아니라 많은 도심 활성화 또는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소득 계급 자체가 변화됨으로써 기존의 도심 인프라는 일부 상위계층이 더 차지하게 된다. 기존 거주자나 생활자들이 재개발된 부동산을 이용하기에는 이미 너무 비싸져서, 이들에게 지속 가능함이란 불가능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아예 재개발과 재생이라는 단어는 기존 거주자들이나 생활자들을 내 모는 폭력적 이미지가 중첩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과연 이 둘 사이는 해법이 없는 것일까?

정말 도심 재생의 결실은 관광객과 부자들만 얻어 가는 것이 될까? 도시 활성화의 멋진 결실은 경제력 있는 일부 사람들만 독점하는 것일까?

소수의 독점은 항상 그렇듯 폐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수의 경험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최근 많은 연구자들은 공공 영역의 개입을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다. 즉, 도심 재생이나 활성화 전략과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제3의 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그 가능성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서 발표되고 있다. 도심 재생과 활성화 사업 초기 계획 단계에 공공성을 투입하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베리팜(Barry Farm)이라는 서민 주거 및 생활공간을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포함해서, 진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맨해튼의 하이라인 프로젝트에는 당시 뉴욕 시장이던 블룸버그의 전폭적 지원으로 완성 시켰다. 유명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는 공익 주거 건축 재단인 Make it Right라는 조직을 구축해서 기존 도시에 주거들을 계속 공급하고 있다. 미국 LA의 공익 재단인 Skid Row Housing Trust는 노숙자들을 위한 주거 공급을 도심 내에 공급하고 있다.

(** 브래드피트는 공익주거 건축 재단 사업을 중단했다. 무료에 가깝게 제공한 주택에서 흰개미 부패등의 문제가 생겼고, 거주자들이 거액의 피해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로 분리해서 판단하는 냉정함에 새삼 놀라긴 한다.)

유럽 각국들 역시 도심 내 노후 시설들을 예술가들이나 벤처기업들의 지원센터로 적극 활용하면서 지주가 가능한 소단위 도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과 과정을 보면서 스페이스 마케팅을 연구하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매우 흥분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스페이스 마케팅 연구가 진행되면 될수록 사례 조사에 노출된 사업자들의 사업 계획과 개념의 장기적 안목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공간이 도구화되어 사람들을 모으는 흥미진진한 공간화 전략이 스페이스 마케팅의 핵심 목표이기도 하다. 문제는 상업적 시각을 강조해서 공간의 흥미도를 증폭 시켰을 때 개별 단위 공간은 수익을 장기적으로 창출하는 구조가 된다. 이 과정은 결국 부동산의 가격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어 기존 생활자들을 외부로 밀어내는 역할이 되었다. 이런 흐름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기존 도심 인프라가 누구보다 요구되는 저소득층이나 기존 생활자들은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고, 저항은 심각한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누구에게나 커다란 상처가 될 수밖에 없고, 도시 재활성화나 재생의 의미가 퇴색되는 결과가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자연의 치유 능력처럼 우리 인간에게도 이런 치유의 의지와 사고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에 대한 또 다른 해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도시 가 무한한 확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한하다고 보았을 때 끊임없는 혁신과 조정을 통해서 가치를 지속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 재생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당위성이고, 이에 대한 부작용이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계층과 기능의 다양성을 재생이나 활성화만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의 역할은 바로 이점에서 중요하며, 굳이 국가나 지방 정부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사례에서 발견되듯이 민간의 기부나 공익 재단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사업의 순서에 가장 먼저 배치되어야 한다. 만약 후 순위로 선택된다면, 어떤 도시 재생 사업도 성공할 수 없음을 우리는 지난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도시 재생이나 도시 활성화는 결코 환경 미화가 아닌, 삶의 가치와 생산성을 풍요롭게 하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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